고지능 성인 ADHD 나의 경험

ADHD 환자들의 지적 능력은 천차만별입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 중에도 ADHD 환자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죠. 저 역시 고지능 성인 ADHD에 속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늘 전교 5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했죠.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게 오히려 독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높은 학업 및 직업 성취도 때문에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고, 결국 치료 시기를 놓치게 되었으니까요. 오늘은 성인 ADHD와 지적 능력의 관계를 살펴본 뒤, 고지능 성인 ADHD는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제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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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ADHD란?

성인 ADHD는 어릴 때 시작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증상이 성인이 되어서도 나타나는 경우를 말합니다. 어릴 때는 주로 과잉행동 특성이 눈에 띈다면, 성인이 되어서는 주의력 결핍이나 충동성으로 인한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필요한 곳에 주의를 집중하거나,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어떤 일을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수행하는 것도 힘들어하며, 자주 지각을 하고 마감 시한을 놓치는 일도 빈번합니다. 또한, 술, 담배, 약물에 다른 사람보다 쉽게 중독되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이 ADHD를 질환으로 인식한 건 1900년대 초반이었지만, 공식적인 질병으로 인정받은 건 1960년대였습니다. 당시에는 '주의력 결핍 장애(ADD)'로 불렸고, 발달 미숙으로 인해 아이들에게만 나타나는 증상으로 여겨졌습니다. 1990년대에 이르러 과잉행동도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1994년 미국에서 발간된 정신장애진단 및 통계매뉴얼(DSM-5)에 '성인 ADHD'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습니다. 199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ADHD가 단순히 아동기에만 국한된 증후군이 아닌, 한 사람의 생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성인 ADHD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다양한 유전적, 환경적, 심리·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ADHD는 유전성이 강한 편이며, 임신 중 혹은 생애 초기의 주변 환경 역시 발병에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심리·사회적 요인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인 ADHD와 지능과의 관계

ADHD는 대뇌 전두엽 영역의 '주의 집중'을 조절하는 부위의 뇌 활성 저하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반면 지능은 '인지능력 + 학습능력'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능력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지능이 높다고 해서 ADHD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인 ADHD 환자들 중에는 지적 기능이 우수한 사람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우수한 학업 성취도는 ADHD 진단을 지연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능이 높을수록 짧은 시간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높은 학업 성취도를 보일 수 있고, 성적이 우수하면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기회가 많아집니다. 학교 같은 한정된 사회에서는 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고, 설령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쉽게 극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환자일수록 의료기관을 늦게 찾게 되고, 치료 시기를 놓치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고지능 성인 ADHD의 어려움

1. 성공 경험 부족으로 인한 낮은 자존감
고지능 성인 ADHD 환자 역시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합니다. 타인과 비교했을 때 성취도가 좋을 뿐,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거나 목표를 달성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노력에 비해 결과가 좋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어 더 큰 혼란과 고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특정 영역에서 학습 장애
전반적인 다른 두뇌 기능에는 문제가 없지만, 주의력 결핍으로 인해 특정 영역에서 학습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난독증, 난산증이 흔하게 나타나며, 맞춤법 실수나 글쓰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3. 성인 이후 삶 전반의 심각한 문제
성인 ADHD 환자들은 직장이나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업무 처리나 마감 기한 준수에 어려움을 겪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을 확률도 높습니다. 건강 문제, 사별, 이혼 등 개인적인 어려움이 발생하면 심리적으로 무너지기 쉽고, 과음, 약물 중독, 우울, 불안 등의 증상을 보일 수 있습니다.

나의 ADHD 경험

저는 어린 시절부터 집중력 문제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 부모님이 가져오신 1학년 '쓰기' 교과서를 통해 한글 쓰기 연습을 했는데, 한 글자를 쓰는 동안에도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초성을 쓰고 모음으로 넘어가는 순간, 나도 모르게 글자를 엉망으로 쓰고 있었죠. 그럴 때마다 부모님께 혼이 났습니다. 일부러 엉망으로 쓴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피아노를 치거나 책을 읽는 것처럼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누가 불러도 모를 정도로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업 성적은 좋은 편이었지만, 기억력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정해진 내용을 정해진 기한 안에 공부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기한 내 과제를 완수해야 하는 수행 평가는 힘들었습니다. 늘 무언가를 잃어버리거나 놓고 다녔고, 수업 시간에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거나 친구와 떠들고 장난치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인간관계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매일 보던 친구의 이름을 잊어버려 인사를 못하고 도망간 적도 있고, 예전에 했던 이야기를 잊어버려 몇 번씩 반복할 때도 많았습니다.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성향 때문에 사회생활도 힘들었습니다. 회의 시간은 지루함의 결정판이었고, 단순 작업이나 엑셀 계산은 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업무에 익숙해지면 지루했고, 벌려놓은 일이 너무 많으면 감당이 안 됐습니다. 결국 잦은 이직으로 이어졌습니다. 나중에 잦은 이직이 성인 ADHD의 전형적인 증상임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성인 ADHD임을 알고 나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습니다. 삶의 문제가 무엇 때문인지 명확해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전에는 문제가 뭔지 몰랐습니다. 어느 순간 '에라 모르겠다!' 하며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죠. 한편으로는 신경학적 문제 때문에 삶이 이렇게 힘들었다는 게 허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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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성인 ADHD와 지능과의 관계, 그리고 제가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지능과 ADHD는 큰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높은 지능은 진단과 치료에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혹시라도 이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면 고지능 성인 ADHD를 의심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제 이야기가 다른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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