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한 삶
성인 ADHD는 신생아 때부터 남다른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신생아 때 모유 수유를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빨아야 젖이 나오는데 그걸 참아내는 조절 능력이 부족해서 그럴 것이다. 나 역시 한달쯤 지나서 젖을 뗐다. 기다려야 하는 모유 대신 입에 넣는 순간 분유가 왈칵 쏟아지는 젖병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허기만 가시면 금방 젖병을 던져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엉뚱한 나의 행동과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가 많다. 지금 같으면 주위에서 'ADHD 아니야? 병원 데려가 봐'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ADHD는 지금처럼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최근 성인 ADHD 수가 급증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한 이들이 성인이 되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이다. 괜히 일찍 태어났다. 조금만 늦게 태어날 걸 그랬다.
가장 황당했던 '목도리 사건'
아무튼 수많은 사건들 중 가장 황당했던 사건이 있다. 우리 가족은 이걸 '목도리 사건'이라고 부른다. 내가 고작 6살 때 벌어진 일인데,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여러 번 회자되었던 사건이다.
때는 겨울이었다. 방학이라 유치원 대신 아침 일찍 피아노 학원을 갔다. 학원까지는 걸어서 20~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아이가 혼자 가기에는 꽤 먼 거리였지만,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피아노 선생님은 날이 춥다며 옷을 제대로 껴입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학원을 나설 때는 이미 방한용품으로 완전 무장한 상태였다. 니트 모자와 벙어리 장갑은 물론 목도리까지 둘둘 감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목도리'는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이었다. 노란색과 검정색 줄무늬에 끝에는 동그랗게 방울도 달렸다. 목에 두르면 마치 벌을 연상시키는 예쁜 목도리였다.
전날 내린 눈이 얼어붙어 길이 미끄러웠다. 차 바퀴가 지난 곳으로 걸어가면 덜 미끄러웠지만, 매번 차를 피해 옆으로 비켜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별 수 없이 살얼음이 얼어있는 도로 가장자리로 걸었다. 넘어지지 않도록 발끝에 온 신경을 집중해 살금살금 걸어왔다.
무사히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본 엄마가 말한다.
"너 목도리는 어디에 뒀어?"
그제야 목이 허전함을 깨닫는다. 손으로 만져보니 목도리가 없다.
"모르겠는데, 분명 학원에서 나올 때는 두르고 있었는데?"
학원까지 가는 길을 되짚어 돌아가 봤지만 이미 누가 주워갔는지 목도리는 없었다. 혹시나 싶어 학원에도 가봤다. 피아노 선생님은 분명 자기가 목에 둘러주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돌아올 때는 다른 길로 돌아왔다. 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목도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 후 이 일은 몇 년 간 놀림거리였다.
"어떻게 그 큰 목도리가 목에서 흘러내리는 줄도 모를 수가 있어?"
그런데 정말이다. 아예 그 길에서는 목도리에 대한 아무런 기억도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황당한 사건도 다 ADHD 때문이었다. 그렇게 잃어버린 장갑과 목도리, 우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가 좀 더 늦게 만났다면 헤어지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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