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MBTI 테스트를 하면 항상 내향성(I)이 외향성(E)보다 약간 높게 나옵니다. 내향성이 51%, 외향성이 49% 정도로 근소한 차이를 보이거든요. 그래서일까요? 가끔 제 자신의 행동을 보면 이해가 안될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는 저는 그야말로 '슈퍼 E'입니다. 그 자리의 분위기를 주도해가는 편이죠. 농담도 잘하고, 편안하게 대화도 주고 받습니다. 저와 오래 안 친구들은 제가 외향적이라는데 추호의 의심이 없습니다. 반면,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180도 다른 사람이 됩니다. 말을 하거나 눈을 마주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온 몸에 힘이 들어간 것도 모른채 긴장 상태로 한참을 있곤 합니다. 집에 오면 완전히 녹초가 될 정도로 말이죠. 저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제가 내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체 저는 어떤 사람일까요?
이런 일이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도 벌어집니다. 어떨 때는 입자처럼 행동하는데, 또 어떨때는 파동처럼 행동합니다. 오늘은 이런 입자의 이중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중슬릿 실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이중슬릿 실험이란?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중슬릿 실험'입니다. 과학자들은 전자를 두 개의 틈(슬릿)이 있는 판에 발사했습니다. 슬릿을 통과한 전자가 뒤에 있는 벽에 부딪히면 무늬가 생기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생기는지 지켜봤죠.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만약 전자가 입자라면, 슬릿을 통과하여 벽에 두 줄의 무늬를 만들겠죠. 하지만 놀랍게도 슬릿을 통과한 전자는 여러개의 줄무늬를 만들었습니다. 마치 물결 같은 파동이 '간섭 무늬'를 만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과학자들은 또다시 실험을 합니다. 이번에는 슬릿을 통과하는 전자 하나하나를 관찰합니다. 두개의 틈 중 어느 쪽을 통과했는지 하나하나 다 확인한거죠. 그랬더니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무늬가 딱 두 줄만 나타났습니다. 마치 입자가 통과해서 만드는 무늬처럼 말이죠.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이중슬릿 실험의 의미
이 실험이 보여주는 바는 명확합니다. 우리가 '관측'하는 행위 자체가 전자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죠. 관측하는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전자를 관측하는지에 따라 전자의 최종 상태가 결정됩니다. 다시 말해, 관찰자가 전자를 파동처럼 생각해 멀리서 바라보면 전자는 마치 물결파가 이동하듯 파동의 움직임을 보입니다. 관찰자가 전자를 입자로 보고 관찰하려 들면 그 순간 전자는 입자로 행동합니다. 입자는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입니다. 마치 제가 내향인이면 외향인인 것처럼 말이죠.
이중슬릿 실험은 양자역학의 핵심적인 개념인 '확률의 중첩'과 '관측의 역할'을 보여줍니다. 상태가 결정되지 않은 채 확률의 중첩 상태로 있다가, 관찰자가 들여다보는 순간 모든 확률은 붕괴하고 하나의 상태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나는 누구일까?
한편으로 양자역학은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저는 외향인이면서 내향인입니다. 관찰자가 '아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인지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을 보이게 되는 거죠. 그렇다고 제가 이상한 건가요? 아닙니다. 저는 그저 외향인의 특성과 내향인의 특성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 두가지 특성 모두가 다 저를 나타내는 중요한 속성인 것이죠.
'워킹맘'의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가 평일에 그 사람을 관찰하면 일하고 있는 '직장인'의 모습을 볼 확률이 높습니다. 주말에 관찰하면 아이들과 놀아주는 '엄마'의 모습으로 관찰할 확률이 높겠죠? 명절에는 어떨까요? 어떤 날은 시댁에서 '며느리'의 역할을 하는 모습을, 어떤 날은 친정에서 '딸' 노릇을 하는 모습이 관측되지 않을까요? 그럼 이 분은 누구일까요? 하나의 속성으로 정할 수 있을까요? 그보다는 여러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고 보는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우리는 관찰하기 전까지는 현재 상태를 알 수 없습니다. 각 상태에 대한 확률만 알 수 있죠. 관찰하는 순간 하나의 상태로 결정됩니다. 마치 양자역학의 원리에 따르는 것처럼 말이죠.
양자역학은 뭐라고 답할까?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보면 나란 존재는 '확률의 중첩'일 뿐입니다. 나는 다양한 '상태'로 발현될 뿐, 하나의 값으로 정의내릴 수 없습니다. 이런 생각의 전환은 자신의 부족함을 쉽게 인정할 수 있게 해줍니다. 나의 부족한 모습은 그저 여러 상태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우연히 하나가 '관측'된 것일 뿐, 그것이 내 존재를 대표하는 특성은 절대 아닌 것이거든요.
이런 관점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고유값을 갖지 않습니다. 여러 '상태'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얼마든지 특정 상태로 관측될 확률을 높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생각할때면 저는 마치 제가 말랑말랑한 고무찰흙이 된 것 같습니다. 어떤 모습으로도 변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확률이 중첩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날이면 양자역학을 떠올려보세요. 오늘 나의 부족한 모습은 그저 여러 상태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가 될 수 있는 수많은 확률의 중첩으로 이뤄져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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